난 영화를 볼 때 리얼리티를 참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현실적인 상황의 영화든 극히 비현실적인 상황에서 전개되는 판타지나 SF든 영화가 마련해둔 설정들이 '진짜'인 것들처럼 보이지 않는 것을 발견하면 대부분의 경우 관객으로서의 최고의 미덕인 몰입을 한 순간에 놓치게되기 때문일것이다.

곧 개봉하는 윤태호 원작의 만화를 영화화한 강우석 감독의 '이끼'가 연일 화제다.
그 얘깃 거리 중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 중 하나인 이장 천용덕 역의 캐스팅...
정재영은 물론 훌륭한 배우이고 강우석 감독이 생각이 있으니 70대이며 극의 흐름에 주축으로 자리하는 이장 천용덕의 캐스팅에 여러 각도로 고민한 결과 정재영을  캐스팅했겠지만 과연 이 영화는 만화 속 천용덕을 실감나게 화면에 부활시켰을까.. 하는 세간의 우려들을 과연 영화는 어떻게 조용하게 만들 것인가 하는 생각이 영화를 기다리는 나의 기대감의 꽤 큰 부분을 차지한 게 사실이었다.

티저영상이 공개되고 지난 주말에 방송 3사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일제히 이끼를 꽤 긴 시간 다루어 홍보해줬다.

자... 여기부터 본론...인데 툭... 뛰어서 결론부터 말하자.
영화 속 천용덕은 다소 실패한, 혹은 제대로 성공하지 못한 캐릭터인 듯하다.
10분도 안되는 짤막한 분량의 영상에 간간히 비춰진 모습이 전부였지만 그 모습은 분장, 자세, 목소리나 말투 어디에도 칠순을 넘긴 노인은 없었다. 
떡 벌어지고 날씬한 체격에 꼿꼿한 허리로 당당하게 서서 눈꺼풀에 힘 꽉 주고 박해일을 노려보고는 정재영의 모습이나 걸음걸이, 목소리 말투에서 보이는 인물은 강우석 감독의 전작 '공공의 적 1-1'에서 정재영이 연기했던 30대 조폭 두목 이원술에서 그리 멀지 않게 느껴진다.
그러다 감깐 스쳐간 한 장면에서 천용덕이 지팡이를 짚고 구부정한 허리를 하고 바쁘게 어디론가 빠르게 (달리고싶지만 달리지 못하고) 걸어가는 장면에서 느낀 부조화도 실망에 한 몫을 했다.

앞서 얘기했듯이 이 짧은 글은 TV 영화 소개 프로그램 세개에서 본 10분이 채 안되는 영상들을 보고 쓰는 것이다.
극장 가서 보고난 후에 욕을 해도 해야 옳겠고 이건 그저 기대감이 훅.. 줄었다는 정도.
그 마저도 이런 디테일을 정말 못 살렸다면 다른 부분도  꼼꼼하지 않았을거란 추측일 뿐이긴하지만...

여러분께서 직접 보고 판단하시라고 MBC의 '출발! 비디오 여행'을 캡쳐한 화면들을 편집해봤다.
중앙에 있는 (꽤 디테일한 주름이 꽤 살아있는 구부정한) 천용덕과 다른 천용덕을 비교해보시기 바란다.
오른쪽 맨 아래 있는 얼굴은 하성규역의 김준배씨다. 천용덕보다 하성규가 더 늙어보여서(별 분장 안한 것같은데...) 곁들여봤다.


(클릭하면 쪼끔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래 영상은 같은 프로그램에서 잘라낸 것..
기술이 없어서 소리가 사라졌다.. (-_-);;;
소리 살려낼 기술이 생기면 대체하도록 하겠다.
마지막에 유준상의 장면을 남겨둔 이유는.. 정재영과 유준상이 동년배라서...
분장 잘하면 동년배가 이렇게 달라보일 수 있어요... 였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그 반대의 이유로 남겨뒀다.


+ 시사 후기

트위터 시사회 이벤트에 당첨돼서 시사회를 다녀왔다.
러닝 타임 2시간 40분 동안 지루하지 않게 본 영화는 만화 '이끼'와는 많이 다른 작품이었다.
그리고 영화를 다 보고도 이 포스트를 잘못 썼단 생각은 안 들었다.

안 좋은 말만 많아서 애쓴 제작진과 배우들에게 미안하다만 우리 영화라고 다 칭찬할 수만은 없는 것이고 내가 지적한 부분들은 영화의 전반적인 평가가 아니고 캐릭터 하나에 관한 것일 뿐이니깐..

영화를 봤으니 할 말은 많지만 개봉 전부터 스포일러 뿌리고 싶진 않고,
영화 막바지에서 천용덕이
"니가 감당할 수 있을 것같아?"
하고 유해국에게 묻던 한 마디 영화를 만드는 내내 강우석감독이 악몽 속에서 윤태호 작가에게 듣던 한 마디가 아니였을까 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한 마디.

아직 개봉 전이라서 김 빼기 싫어서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런 저평가들은 원작에 매료됐던 나와 또 다른 분들의 의견일 뿐이다. 원작 만화에 대한 정보 없이 영화를 봤다면 꽤나 신선하고 재미있는 작품이었겠다 싶고, 특히나 배우들의 호연은 정말로 박수 쳐주고 싶은.. (시사회에 깜짝 무대인사를 왔던 유해진, 김상호, 박해일, 정재영씨에겐 박수를 이미 쳐드렸군. ^^)

다시 말하지만 두 시간 사십분을 앉아서 눈을 떼지 못할 정도의 흡입력을 가진 영화라는 것 잊지 마시기를...


Posted by jEdo :